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센카쿠 열도 (문단 편집) === 역사 === [[1879년]], [[일본제국]]은 사츠마 번의 정벌 이래 작은 예속국가였던 [[류큐]]에 침입해 류큐 왕국을 폐합하였다. 류큐왕국과 교류를 하고 있었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는 [[청나라]]에 이 사건은 심각한 문제이므로 청나라가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랜트의 중재로 청나라 측은 류큐를 3분해서 오키나와 남쪽의 류큐 열도는 청나라 영토, 오키나와 북쪽의 류큐 열도는 [[일본]]에 병합시키며 오키나와는 독립을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은 오키나와 남쪽의 류큐 열도를 청나라에 주는 대신 오키나와 이북의 류큐 열도를 모두 일본에 병합시키며 류큐 왕국을 일본에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홍장]]은 일본의 제안을 조공국이 없어지는 굴욕이라고 여겼는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 [[청일전쟁]]이 나면서 대만까지 통째로 일본이 점령하면서 류큐 분할은 없던 일이 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때 이홍장이 오키나와 이남의 류큐 열도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섬들은 전통적 일본의 영역이 아니라 류큐, 아니면 대만 소속인데, 류큐 열도의 섬으로 본다면 그중에서도 [[오키나와]] 남쪽의 류큐 열도에 소속된 섬이기 때문이다. [[1895년]]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은 이 군도를 [[무주지]]라며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편입과정은 현지에 표지 말뚝을 설치한다는 각의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https://www.kr.emb-japan.go.jp/territory/senkaku/question-and-answer.html#q2|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실제로는 청일전쟁 승리 후 세울 필요성이 없었으므로 이를 실행하지는 않고, 1969년 5월 10일에 세웠다. 이때 편입 과정에서 외국에 알리지 않고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 >질문: 일본 정부는 1895년의 각의(閣議) 결정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실시한 것은 아닙니까? > >일본 정부 답변: 1895년의 각의 결정이 당시 '''공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당시 다른 일반적인 각의 결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술한 각의 결정 이후 일본은 민간인의 토지 차용 신청에 대한 허가 발표, 그리고 국가 및 오키나와현에 의한 실지조사 등 센카쿠 제도에 대해 공공연히 주권 행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의 영유 의사는 대외적으로도 명백했습니다. 또한 국제법상 선점 의사에 대해 '''타국에 통보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https://www.kr.emb-japan.go.jp/territory/senkaku/question-and-answer.html#q10|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1905년에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할 당시에도,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모르고 있다가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이 독도에 일본인이 방문하고 나서야 [[http://dokdo.mofa.go.kr/kor/include/print_faq.jsp?class_faq=q10|이를 알고 본국 정부에 보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당시 일본은 영토를 편입하면서 관련국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몰래 해왔다. 위 일본 정부의 답변에서도, 1) 민간인의 토지 차용 신청에 대한 허가 2) 오키나와현에 의한 실지조사 같은 주권행사가 '대외적인 영유권 의사 표명'이라고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이는 일본 국내에서 몰래 할 수 있는 것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미국이 중국에 대만과 함께 류큐 일대를 중국에 완전히 '반환'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이상하게도 [[장제스]]가 거부했다는 주장이 있다.[[http://www.dailian.co.kr/news/view/244801|#]]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굳이 추정을 해보자면, 그때 장제스가 류큐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 섬들은 대만 아니면 류큐 소속이니까.''' 물론 중국이 이 곳을 실질 통치하겠다고 나섰다면 일본이 개입하지 않은 채 중국과 대만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것이다. 현재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중국과 대만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무력화해야 하는 입장이라 일단은 협력 관계에 있다. [[독도]] 문제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을 지지하면서, 굳이 끼어들려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센카쿠 열도와 인근 해역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토로 귀속됐다가 1951년 9월 미일강화조약 체결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양되었다. 처음에 미국은 당연히 중국에 모두 반환해주려고 했는데 장제스가 거절한 이후 미국은 땅 욕심이 생겨서 결국 미국의 영토가 됐다. 그러다 다시 일본에 반환되었고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동 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으나, 1968∼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의 아시아 연안지역 광물자원 공동개발조정위원회(CCOP)가 동중국해 일대의 해저조사를 실시하여 [[이익|석유매장 가능성을 확인한 시점]]부터 중국-대만의 영유권 논쟁이 활발해졌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95770&cid=42147&categoryId=42147|문단 서술 참고 내용의 출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